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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당시 어느 한 목격자의 증언은 소름끼치는 장면을 잘 그리고 있다.
-제대로 밝혀진 제2전선 양민학살 가운데 문경의 학살이 6.25이전에 이루어진 학살로서 그 야만성, 무차별성, 산간지역에 걸쳐 진행된 보편성, 조작성(양민을 공비와 통비로 조작)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면 6.25이후의 대표적 보기로는 거창 양민학살이다. 거창사건은 김영삼 문민정부에서 1996년 1월 5일 공포한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2조 정의인 "거창사건이라 함은 공비토벌을 이유로 국군병력이 작전수행중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가 시사하듯이 1951년 2월 10-11일 사이에 거창군 신원면의 양민 719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11사단 진주주둔 9연대 3대대(연대장 오익경, 대대장 한동석, 남원에 13연대, 광주에 20연대 주둔)가 신원면 주민 약 1천 명을 신원국민학교에 소집하여 경찰 및 지방유지 가족을 제외한 전원 719명을 박산골짜기에서 집단사살한 뒤 시체를 불태웠다. 그리고는 187명의 공비 및 통비분자를 소탕했다는 전과보고까지 했다. 피학살자는 남 331명 여 388명, 14세 이하 359명, 60세 이상 359여명이었다('거창양민학살사건 해결을 위한 청원서'). 군은 이 학살을 은폐하려고 외부와의 왕래를 일체 차단하고 생존자에 발설하면 공비로 총살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사단본부에서 3월 21일 사단장 최덕신의 명의로 "학살주민의 대부분이 양민이어서 군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이 밖에도 부녀자 강간, 물품강요, 재산약탈 등으로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라는 보고서를 올렸다. 이에 국방장관이었던 신성모는 "외국의 원조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마당에 이 같은 비행이 외국에 알려지면 전쟁수행에 지장을 초래하고 군의 사기를 해친다"면서 "희생자 수는 187명이며 모두 통비분자였다"고 조작했다. 이후 국회·국방부 합동조사반의 현지조사 방문단이 신원면에 들어가려는 시점에서 백두산 호랑이 김종완이 매복시킨 위장공비의 위장공격으로 조사가 중단될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군법회의에서 사단장 최덕신은 기소되지 않고, 연대장 무기, 대대장 10년, 소대장 이종대 무죄, 김종원 3년 언도를 받았으나17) 최덕신은 대사 등으로 출세가도를 달렸고, 김종원은 대통령 특별명령으로 석방되고는 전북경찰국장으로 복권되고, 이승만은 이를 이순신이 간신배에게 모함 당하듯이 음해를 입었다고 보았다. 사단장과 연대장도 1년도 안되어 석방되었다(서중석, 1999:676).-
-법률가협회보고서는 미군의 범죄행위를 아래와 같이 더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다.
-북한측의 학살주체는 인민군을 중심으로 한 북한정권기관, 빨치산, 지방좌익이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인민군 중심의 정권기관은 북한 법에 의거하여 재판절차를 밟아 반동에 대한 처형을 감행하는 절제된 형식이었다. 또 공식적으로 만행을 금지시키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 이후 후퇴하는 과정에서 법과 재판 및 절제적 처형은 지켜지지 않고 형무소 및 유치원에 수감된 우익반동을 학살하는 만행이 자행되었다. 지방 좌익은 대부분 보도연맹원 학살 피해당사자이기 때문에 보복감정에 치우쳐 인민군 진주직후 보복학살을 주도했다. 빨치산도 토벌대에 비해 학살이나 만행을 자제하였지만 때로는 산간마을 양민에 대한 학살만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남과 북의 대조적 차이는 북한은 상대적으로 정권기관 차원에서는 재판과 법 및 고문금지 등 절제된 모습을 보였지만 지방좌익이나 빨치산이 야만성과 비적법성을 오히려 더 노정 시켰다. 반면 남한의 경우는 공권력인 국가기관인 군과 경찰이 비정규군 못지 않게 비적법성과 야만성, 조작성, 무차별성 등을 노정 시켰다. 이들 북한 측 학살주체에 의해 저질러진 피학살자 수는 정부의 공식적 주장인 129,000명 선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수적으로 남한 정부나 비정규무장단체 의해 주도된 숫자보다 훨씬 적다.- ![]() ![]()
학살 자체가 야만성의 발로이지만 상상을 초월한 극도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제시하여 한국전쟁이 특히 이승만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양민학살이 얼마나 더러운 전쟁의 성격이었는지를 보겠다. 여기서의 양민학살은 주로 인륜적 기준에 의한 것에 중점을 둔다. 전쟁에는 모든 사람에게 야만성과 비극을 가져오지만 특히 연약한 부녀자와 어린이 및 노인에게 이들 야만성이 집중된다. 먼저 부녀자에 대한 강간 등 능욕과 관련된 야만성이다. 좌익으로 몰린 진영의 여교사는 얼굴이 예쁜 젊은 처녀들과 함께 능욕을 당하고 암매장되었는데 그녀는 다리까지 잘리었다. 또 충무·통영군 남녀 800여명의 학살은 헌병무관들이 부녀자 약탈의 은폐 책으로 빨갱이로 몰아 수장한 사건이었는데 이 당시 그들은 창고에 끌려가 남녀 모두 옷을 벗긴 채 구타를 당하였다(김삼웅, 1996:169). 남원군 대강면 강석리에서 11사단 205부대는 마을 주민 60여명을 살해하고 부녀자 7명을 끌어내어 대검으로 목과 유방, 심지어 음부까지 난자하여 모두 죽였다. 이번에는 19명을 일보도로 참수하였는데 김점동이 일본도에 의해 목을 두 번이나 내려쳐졌으나 죽지 않자 "더러운 놈 모가지가 왜 이렇게 질겨"하면서 장교는 세 번째 내려쳤다(서중석, 1999:620). 창원군 북면에서도 해군첩보대대장으로 황광수수병 등이 이곳 주민과 피난민 60명을 빨갱이로 몰아 살해하면서 어린애가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일본도로 내리쳐 죽이고 부녀자들에게는 젖가슴을 칼로 자르고 팔다리를 절단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김삼웅, 1996:107-108). 이미 앞에서 보았지만 아산군 신창지서주임이던 유해진은 마을 부녀자를 농간하고 부하까지 농간하게 하고 좌익 측 부녀자를 첩으로 삼았다. 이제 인간으로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反인륜과 패륜아 행위를 살펴보겠다. 이에는 6.25전후 가장 악명을 떨치던 일본군 출신이고 이승만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던 김종완이 대표적이다. 그는 여수 등에서 일본도로 사람을 참수하는 것을 즐겼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1950년 5월 6일 6.25전에 백골부대를 이끌고 거제도 일운면 구조리 앞 바다에 주민 1천명을 1시간 동안 찬물에 세워놓고 시아버지와 며느리, 장모와 사위 등 서로 어려운 사이를 골라 서로 마주 뺨을 때리도록 하고 만약 세게 때리지 않으면 총개머리판과 몽둥이로 난타하는 짐승 같은 짓을 저질렀다(서중석, 1999:583). 이 같은 '뺨때리기'와 '말태우기'는 흔히들 자행되던 보편적 현상이었다. 제주에서 토벌대는 주민들을 모아 놓고 시아버지를 엎드리게 하고 며느리를 태워 빙빙 돌게 하고, 할아버지와 손자를 마주 세워 놓고 서로 뺨을 때리게 하였다. 총살에 앞서 가족들을 앞에 세워놓고 총 맞아 쓰러질 때 가족들로 하여금 만세를 부르게 하기도 하였다(김종민, 1998:33). 통영에서는 죄 없는 양민 수십 명을 창고에 가두어 놓고 강제로 정교를 맺게 하고는 수장시켜 죽였고(김삼웅, 1996:108), 필자와의 면담에서 어느 육군상사는 시숙과 제수를 옷을 벗겨 강제로 정교를 맺게 하고는 덮석에 말아 굴리는 반인륜적인 만행을 저질렀다는 전언을 해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가공스런 야수적 행위는 이미 제주에서부터 알려졌다. 처녀와 총각을 불러내어 서로 정교를 강요하였고(황상익, 2000:153 재인용), 처모와 사위를 대중이 모인 가운데 정조를 맺게 하고는 쏘아 죽이기도 하였다(김종민, 1998:33). 완도 경찰은 완도읍 두암리에 살던 좌익아들을 둔 할머니의 이야기다. 경찰이 그 아들을 죽이고는 아들의 간을 꺼내 할머니 입에 물리고는 마을을 돌아다니게 하였던 일이다. 그 할머니는 반 미친 상태에서 경찰이 시키는대로 하였고 13년형을 받아 7-8년 복역 후 석방되었으나 몇 달 후 죽었다고 한다(김삼웅, 1996:119). 이러한 반인륜적 행위가 단지 6.25 때문에 발생한 것만은 아니다. 이미 일본군국주의의 악랄한 인권말살주의에 물들어 있던 친일파, 곧 민족반역자들이 반공제일주의를 걸었던 미군정과 결합하여 그들의 생사를 걸고 남한사회의 권력을 장악하면서부터 구조적으로 잉태되었다. 실제로 미군정 당시에도 Mark Gain의 Japan Diary 에 서술되어 있듯이 경찰이 유사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물론 6.25이전에도 4.3항쟁과 여수항쟁에서 보듯이 토벌대의 이러한 만행은 다반사였다. 단지 6.25이후 보다 대규모와 빈번히 일어났을 따름이다.-
그럼 빨갱이, 빨갱이 걸핏하면 빨갱이를 죽어라 외치던 놈들은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요? ![]() # by YOMM | 2008/06/19 12:22 |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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